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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건물, 박제된 기억

옛 전남도청이 2026년 5월 복원 개관했지만, 방문자는 차갑게 정리된 전시실 속에서 오히려 역사적 온기를 느끼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건물의 외형 복원을 넘어 그 안을 채울 살아있는 기억과 인간적 서사의 부재를 문제 삼고 있다.

정평정의로운평화 에디터·2026.10.14.

먼저 읽는 세 줄

  1. 1. 옛 전남도청이 2026년 5월 복원 공사 끝에 다시 문을 열고 5·18 역사 현장으로 재탄생했다.
  2. 2. 그러나 전시는 차가운 사실과 데이터만 나열할 뿐, 당시 사람들의 숨소리와 공동체적 온기는 빠져 있다.
  3. 3. 단순한 기념관이 아니라 방문객이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성찰할 수 있는 살아있는 체험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복원된 건물, 박제된 기억
이미지: Justice Peace News

옛 전남도청에서 묻다: 기록 너머, 살아있는 기억으로

2026년 5월 18일 오랜 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옛 전남도청에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23일 다녀왔다.

새롭게 단장된 외관은 깔끔했고, 전시 안내판의 글씨는 명료했다. 수년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 역사적 현장으로 돌아온 옛 전남도청 건물의 첫인상은 잘 정돈된 박물관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깨끗한 벽면과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동선은 지난 세월의 상흔을 말끔히 씻어낸 듯했다.

그러나 정갈하게 정비된 복도와 전시실을 거닐며 마주한 것은 이상하리만큼 서늘한 적막감이었다. 물리적인 공간의 형태는 제자리를 찾았으나, 정작 그 안을 가득 채웠어야 할 사람들의 숨결과 뜨거웠던 연대의 서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곳에는 차갑게 박제된 '사실의 기록'과 수치화된 데이터만이 유물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건축적 복원은 훼손된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소중하고 필수적인 첫걸음이다. 비극과 투쟁의 현장을 물리적으로 재현하고 공간의 원형을 찾아가는 작업은 지나간 시간에 역사적 당위성과 현장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부서진 기둥을 세우고 총탄 자국을 보존하는 물리적 작업 없이 역사적 기억을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건물이라는 '그릇'을 복원하는 것과 그 안을 채우는 '기억'을 살려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당시 도청을 지키던 이들이 느꼈던 치열한 인간적 고뇌, 절박했던 순간의 숨소리, 그리고 광장을 가득 메웠던 공동체적 온기를 생략한 채, 깔끔하게 정돈된 패널과 차가운 설명문만 채워 넣는다면 그곳은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 아닌 단정한 '기념관'에 그치고 만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역사인 5·18민주화운동의 최후항쟁지, 옛 전남도청입니다."라는 설명문은 관람객을 역사적 사건의 주체적 체감자가 아닌, 그저 제3자의 위치에 선 관찰자로 머물게 한다. 공간의 형태는 완성되었으나, 정작 그 안에서 숨 쉬어야 할 역사적 서사는 박제되어 버린 셈이다.

1980년 5월, 도청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이들은 거창한 영웅이 아니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평범한 아들이었고, 딸이었으며, 우리 곁의 이웃이었다. 광장에서 나누어 먹던 주먹밥의 온기, "동포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라며 밤공기를 갈랐던 가녀린 방송 목소리, 그리고 부족한 혈액을 채우기 위해 병원 앞에 길게 줄을 섰던 시민들의 순수한 윤리적 결단까지. 이러한 살아있는 구술과 인간적 서사가 누락된 공간은 관람객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한다.

역사는 건물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기억의 건조함' 때문에 비로소 잊힌다. 옛 전남도청이 과거의 특정 시간에 고립된 채 멈춰 서 있는 과거의 유적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실의 전달'을 넘어 방문객이 '감정적 공감과 역사적 성찰'을 이뤄낼 수 있는 살아있는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차가운 전시실을 온기 있는 서사로 채우는 일이야말로 복원의 진정한 완성이다.

복원된 옛 전남도청의 긴 복도를 나서며 스스로에게 다시 물었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유물처럼 잘 포장하여 진열장에 보관할 것인가, 아니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민주주의를 비추는 뜨거운 거울로 살려낼 것인가?"

건물의 외형은 복원되었지만, 그 안의 기억을 완성하는 것은 이제 그 공간을 찾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차갑게 박제된 기록의 벽을 넘어, 그날의 뜨거웠던 숨결과 숭고한 가치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